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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6/05 효순이·미선이를 기억해야하는 이유 (9)
  2. 2008/05/19 광우병은 자본주의식 탐욕의 결과물 (4)

촛불의 시작, 효순이·미선이를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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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수만 개의 촛불이 뜨겁게 시청을 달구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에 반대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촛불은 비가 와도, 탄압이 심해져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촛불 속에서 과거를 기억한다. 20대들은 2002년 월드컵과 여중생사망사건을, 30·40대들은 87년 6월 항쟁을, 그리고 그 윗세대들은 4·19를 기억한다. 국민의 힘으로 역사를 다시 쓰던 과거의 모습을 지금의 광우병집회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건 언제부터였을까? 시작은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집회였다. 그 때의 촛불은 월드컵열풍에 묻혔던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한 가슴 아픔과 11월 가해자 미군병사가 무죄판결을 받은 것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었다.

 사람들은 효순이·미선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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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현장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효순이·미선이를 광우병과 동등한 선상에서 기억하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몇몇 20대들은 ‘잘 기억이 안난다’ 혹은 ‘효순이·미선이 문제는 광우병문제만큼 급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집회와 이 집회는 성격이 다르지 않나’라는 말을 했다. 또한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것은 어쩔 수 일 아니냐’면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촛불집회 근처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세워져 있던 촛불기념비가 있었다면 사람들은 여중생사건을 조금이라도 기억했을까? 다들 알다시피 국민성금을 통해 효순이·미선이 1주기 때  효순이·미선이 촛불기념비를 세워놨었다. 한 달 후 누군가 기념비를 훼손해서 다시 제작했고, 2004년 말에는 불법적치물이라는 이유로 종로구청에서 강제철거를 하고 압수해버렸다. 그 뒤 행방이 묘연해진 촛불기념비가 청운공원 뒤 야산에 버려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ON20는 청운공원으로 갔었다. 그러나 관리자는 ‘구청에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열람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존재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촛불기념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 돌덩어리에서 효순이·미순이사건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효순이·미선이를 잊어버리면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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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지은씨(21)는 2002년 중학교 2학년이었던 당시 여중생추모집회에 참가했었다. 인터넷에서 본 동갑내기 두 여중생의 죽음이 너무 처참했고, 이 모든 게 불평등한 한국과 미국관계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촛불을 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도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와 학생참여를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당시 촛불집회를 회상하면서 “우리나라는 왜 이러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시대에나 있던 치외법권에 이어서 미국한테 또 이럴까하면서 정말 답답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효순이·미선이의 문제를 해결하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의 고유경 사무국장은 “광우병집회와 여중생집회의 공통점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국민들이 들고 일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광우병의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군범죄 때문에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고 말했다. 비록 그 가능성을 알게 된 대가는 컸지만, 여중생사망사건은 우리가 배운 하나의 역사적 교훈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효순이·미선이를 잊지 말아야하는 이유인 것이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무시했던 것은 최근의 광우병사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의 ‘실망발언’에 사람들은 또 한 번 분노하고 있다. 우리를 이렇게 무시할 수 있냐면서 야당은 물론 국민들까지 들고 일어섰다. 2002년도에 이미 미국의 우리나라를 하나의 주권국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닳은 것을 생각하면 다소 둔한 반응인 듯하다. 만약 2002년도에 효순이·미선이사건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가 잊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었다면 과연 지금도 미국은 똑같은 태도를 취했을까. 지금의 사태는 결국 효순이·미선이를 잊어버린 것에 대한 벌인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순이·미선이의 사건을 보수언론의 말처럼 ‘단순한 교통사고’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 그것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는 미국과의 관계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듯 두 여중생의 죽음은 가족만의 상처가 아닌 사회 모두의 상처이다.

더 이상의 희생을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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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월드컵을 즐기고 있을 때, 언론의 관심밖에 머물다가 5개월이 지나서야 빛을 봤던 효순이·미선이 사건. 이 사건은 3년이 지나서 겨우 수사기록이 공개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재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같이 주장했던 또한 소파개정또한 아직 정부는 얻어내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미군범죄는 더욱 더 일어나고 한 맺힌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최근엔 효순이·미선이가 사고가 났던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무건리에 마을주민들을 쫓아내버리고 훈련장을 짓겠다고 해서 주민들이 분통해 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잊는 바람에 또다시 고통 받고 있는 제 2의 효순이·미선이인 것이다.
 의정부에서 효순이·미선이 집회를 하면 늘 비가 왔었다고 한다. 어린 여중생들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새까맣게 태우는 비가 내리는 걸까.
 

※ 6/14일 효순이·미선이 6주년 추모행진이 있다. 사건현장부터 지금 훈련장확장논란이 되고 있는 무건리까지 걷는 행사이다. 이 날 ‘우린 너희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신청은 hau94@hanmail.net으로 하면 된다.


 

공동 취재
    정윤정 ON20기자
                강희주 ON20인턴기자
                염유섭 ON20인턴기자
2008/06/05 01:27 2008/06/05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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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육을 먹고 자신이 먹은 인간의 혼령 때문에 미친 듯이 웃어대다 죽는다는 ‘래핑맨’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문화별 차이는 있지만, 래핑맨이 자주 나타나는 지역에서 식인의 의미는 식량부족보다는 부족 혹은 성의 우월성 등으로 나타난다. 단순히 정복지에서 우월감을 나타내기 위해, 혹은 대상의 정신(spirit)을 취하기 위해 인간의 인육(특히 뇌)을 먹었던 것이다. 필요이상으로 인육을 취했던 죗값은 다시 행위 주체(식인을 했던 이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인간 최후의 금기를 어긴 대가로 치매와 신체마비증상을 보이며 죽었다. 이처럼 인간의 탐욕은 예전부터 자기파멸의 모습으로 인류에게 ‘금기시 되어야 할 지나친 욕심’에 대한 경고를 동시에 안겨 주었다.
 
지금의 탐욕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가

 17세기 이후 자본주의 사회 속 탐욕은 개인의 탐욕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존의 탐욕이 개인의 집착, 우월감, 정신 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지금의 탐욕의 근원지는 한 곳으로부터 시작된다. 바로 ‘자본’ 그 자체이다.
 자본은 자기 자신이 탐욕의 근원지이자 목적이 된다. ‘이윤추구’를 기본원칙으로 운영되는 이 자본주의 사회는 이윤이 된다면 그 어떠한 물건도 진열대에 올려놓으며 최대의 가치를 뽑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이 과정 속에서 지켜야 할 몇몇 가지 사회원칙(안정성, 환경보호, 노동자 인권 등등)들은 도움이 안 될 때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 원칙을 지키지 않은 대가는 여태껏 인간이 겪어왔던 것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건 죄의 대가가 ‘인과율’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 폐수를 흘려보낸 공장주는 멀쩡하지만, 그 동네 사는 아무개 씨는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문제 있는 소고기를 파는 업체는 멀쩡하지만 먼 동네에서 사는 아무개 씨는 광우병에 걸려 죽는다.
 
자본의 탐욕이 광우병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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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피니언 포스트

 미국에서 생산되는 소고기의 99%는 대기업에서 생산된다. 타이슨 등으로 대표되는 미 축산업체들은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이 키우는 소들은 자기네 동족, 닭, 돼지의 부사물로 만든 ’동물사료‘를 먹고 자란다.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동물사료 사용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한 단계를 건너 뛴(소-닭·돼지-소) 사료섭취에 대해선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좁아터진 공간에서 고기를 먹고 자란 소들은 풀을 먹으며 자란 소보다 짧은 시간에 몸집을 불리게 되고, 운동량이 적기 때문에 고기도 상대적으로 연하게 된다. 이른바 ’잘 팔리는 고기‘로서의 소가 생산되는 것이다. 이는 ‘버리는 것도 돈이고, 먹으면 빨리 큰다는데 그깟 광우병 때문에 이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업계의 생각 때문이다. 광우병 논란이 일어 미국 내에서 소고기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곤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했다. 매출이 떨어진 이 거대한 기업들은 만만한 나라에 다시 소고기에 대한 압박을 넣기 시작한 것이다.(국무장관이 직접 방한해서 ‘소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그림이 다소 웃기지만)상대적 약소국가들은 이 탐욕의 결과물을 울며 겨자 먹기로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광우병의 문제는 종과 국경을 넘어서 존재하게 되었다.
 
탐욕의 절정 - 소는 ‘스테이크’를 먹고, 사람은 굶는다

 소 한 마리가 한 달 동안 소비하는 곡물량은 인도인 두 명이 1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곡물의 양보다 많다. 소가 이렇게 나름대로 호강스러운 생활을 하며 병에 걸리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에선 고기 한 점은커녕, 옥수수 한 알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아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의 창자이든, 소가 먹는 옥수수든 간에 이는 배고픈 이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소는 먹여서 고기로 팔수 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고기로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인류가 더욱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면서 사람을 소보다 못한 동물로 취급하고 있다.

 간디는 나라가 망하는 징조로 ‘인간성 없는 상업’과 ‘도덕성 없는 과학’을 들었다. ‘도덕성 없는 과학’을 인간성 없이 사람들에게 팔고 있는 지금 시점에 가장 잘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2008/05/19 18:30 2008/05/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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