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신문, 가톨릭신문, 두 교회 언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가톨릭사회운동 활동가들이 모여 발행하는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 여기]. 9월에 정식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데스크 컬럼 - 한상봉
서울대교구는 왜 행동하지 않는가
한때 서울에서 2호선 전철을 타면 을지로입구 역을 알리는 노선도 옆에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이라는 알림글이 적혀 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명동성당은 현재 ‘보수’중이다. 뭔가 부실한 구석이 있어서 보수(補修)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언제 공사가 끝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보수할 구석이 많은지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명박산성’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바리케이트로 광화문 앞을 막고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닫아걸고 있던 이명박 정권조차 사과를 하고, 미국에 사람을 보내 ‘재협상은 아니지만 추가협상’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판국이다.
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는 아이 젖 주는 심경이 아니라 정부 자신의 결정적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며, 대국민 설득을 위해 최소한의 방책이라도 마련하자는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지난 한 달 여 동안 국민들이 보여준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번 촛불집회는 단순히 광우병 쇠고기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스스로 주권자임을 선포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미 있는 시간 동안 명동성당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명동성당을 들먹이는 사람도 없었다. 명동성당은 스스로 침묵하고 있었고, 아무도 명동성당에서 촛불을 들고 시청앞 광장으로 걸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톨릭교회가 모두 이 촛불행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아니다. 5월 19일에는 광주교구 남동성당에서 5.18 기념미사를 하면서 김희중 주교와 전종훈 신부(정의구현 전국사제단 대표) 등이 강도 높게 현 시국을 비판하였으며,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은 전주 중앙성당과 전동성당에서 2차례나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촛불행진을 했다. 부산교구 정의구현사제단도 6월 10일에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민들과 촛불집회에 참여하였다. 하물며 그동안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도 거의 없고 시국기도회를 별로 열지 않았던 대전교구조차도 정의평화위원회를 발족하고 지난 6월 9일에 정평위 차원에서 대흥동 주교좌성당에서 사제단 80여명이 공동집전한 가운데 시국미사를 봉헌한 뒤에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대전역까지 침묵시위를 하고서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촛불집회가 최고조에 달했던 6월 10일 40여만 명의 서울 시민이 참석한 촛불집회가 있기까지, 서울대교구에서는 지난 3일 정평위 차원에서 달랑 성명서 한 장을 발표한 뒤로 시국미사는 물론이고 아무런 행동도 없었다. 그저 말로 한 마디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교구 안에 있는 사제들을 움직이고 신자들을 설득하여 촛불집회에 나설 용기도 자신도 없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아예 성명서 이상으로 행동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야말로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부유한 노신사의 교회’가 되어버린 것 같다. 진리에 대한 열정도 자기 백성에 대한 자비와 사랑도 상실한 교회, 그저 있는 것만 받아먹고 안온한 자리에 머물러 욱신거리는 제 몸만 돌보는 교회라면 이미 복음은 그곳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날 서울에서는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마당에서 수도자들이 모여서 ‘쇠고기 재협상을 위한 시국 미사’를 봉헌하였다. 한국 프란치스칸 가족봉사자 협의회와 정의평화 창조질서 보전 위원회가 주관한 것이다. 서울‘대’교구 관할지역에서 교구 사제들은 다 빠지고 수도자들만 거리로 나선 것이다. 시민들은 이들을 보고 박수를 쳤다. 그러나 시청 앞까지 침묵시위를 하고 촛불을 든 수도자들에게 갈채를 보낸 것이지 명동‘대’성당이나 가톨릭교회 자체에 보내는 찬사는 아니었다. 서울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인 명동성당은 언제까지 보수 공사만 할 것인가? 보수하면서 아예 보수화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묻는 신자들도 있다.
6.10 촛불문화제가 열리기 하루 전날 이명박 대통령의 요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서울대교구의 수장인 정진석 추기경이 한 말은 그저 “여론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달라”는 의례적인 점잖은 이야기뿐이었다. 정평위에서 이미 발표한대로 ‘재협상’을 주문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여론을 듣는다는 시늉을 하기 위해, 청와대측이 짜놓은 각본에 따라 비공개로 만나는 자리에 추기경이 선뜻 응한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참에 서울대교구와 정진석 추기경은 교회의 공식적인 태도와 상관없이 많은 사제들과 신도들이 줄곧 촛불집회에 참여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 역시 교회의 지체이며 또한 스스로 교회이기도 하다. 이들 하느님의 백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교회당국과 추기경 역시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과 소통하는데 실패했듯이, 우리 교회도 자신의 지체들이 말하는 다양한 소리를 듣는데 실패한다면, 말 그대로 교회는 성령이 주시는 젊음과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지금여기 편집국장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 http://cafe.daum.net/cchereandnow 한상봉 200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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