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는 행정구역 상으로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속합니다. 매표소 입구를 들어서면 시원스레 쭉쭉 뻗은 전나무길이 드러납니다. 내소사를 들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밟고 가야하는 길입니다. 일주문부터 천왕문까지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길은 약 600m에 이릅니다. 서늘하고 따뜻한 이런 길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이 길이 예전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했던 길이었음을 옛 기록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옛시인들이 한시로 노래한 소나무 숲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이리 곧게 뻗은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내소사를 찾은 방문객을 반기고 있습니다.
전나무숲 길을 걷고 있노라면 인간이 일부러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표지판은 전나무 숲이 150여 년 전에 조성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크레인이 발명되고 건물이 드높아지기 전에는 일부러 숲을 가꿀 필요도 없었고, 숲 가운데로 길을 낼 필요가 없었고, 그럴 방법도 없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숲을 만들면, 인간은 숲에서 자그마한 길을 얻어 사는 것으로 서로 공존하며 살아갔겠죠.
봉래루를 지나면 수령 천여 년에 달하는 느티나무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나무는 왜 늙으면 늙을수록 제 색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거대한 느티나무 우듬지를 올려다보다가 신기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느티나무에 다른 식물이 기생을 하고 있더군요. 오랜 세월동안 느티나무에 흙이 쌓이자, 그 흙에 살포시 뿌리를 내린 식물. 자연은 서로 돕고 살고 있었습니다.
내소사는 고창 선운사의 말사입니다. 633년(백제 무왕 34) 백제의 승령 혜구두타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소래사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1633년(인조11) 중건할 무렵 내소사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내소사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해옵니다.
하나는 대웅전을 중수할 때, 동자승이 괴목 하나를 감추어 발생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성미 급한 호기심이 빚은 실수에서 비롯합니다. 미당 서정저눈 내소사에 얽힌 이 설화를 놓치지 않고 시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내소사 대웅보전 단청은 사람의 힘으로도 새의 힘으로도 호랑이희 힘으로도 칠하다가 칠하다가 아무래도 힘이 모자라 다 못 칠하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
내벽 서쪽의 맨 위쯤 앉아 참선하고 있는 선사, 선사 옆 아무것도 칠하지 못하고 너무나 휑하니 비어둔 미완성의 공백을 가 보아라.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웅보전을 지어 놓고 마지막으로 단청사를 찾고 있을 때, 어떤 해어스럼 제 성명도 모르는 한 나그네가 서로부터 와서 이 단청을 맡아 겉을 다 칠하고 보전 안으로 들어갔는데, 문 고리를 안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며 말했었다.
“내가 다 칠해 끝내고 나올 때까지 누구도 절대로 들여다보지 마라.”
그런데 일에 폐는 속에서나 절간에서나 언제나 방정맞은 사람이 끼치는 것이라, 어느 방정맞은 중 하나가 그만 못 참아 어느 때 슬그머니 다가가서 뚫어진 창구멍 사이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나그네는 안 보이고 이쁜 새 한 마리가 천정을 파닥거리고 날아다니면서 부리에 문 붓으로 제몸에서 나는 물감을 묻혀 곱게 곱게 단청해 나가고 있었는데, 들여다 보는 사람 기척에
“아앙!”
소리치며 떨어져 내려 마루 바닥에 납작 사지를 뻗고 늘어지는 걸 보니, 그건 커어다란 한 마리 불호랑이었다.
“대호 스님! 대호 스님! 어서 일어나시겨라우!”
중들은 이 곳 사투리로 그 호랑이를 동문 대우를 해서 불러댔지만 영 그만이어서, 할 수 없이 그럼 내생에나 소생하라고 이 절 이름을 내소사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 단청하다가 미처 다 못한 그 빈 공백을 향해 벌써 여러 백년의 아침과 저녁마다 절하고 또 절하고 내려오고만 있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언제나 일을 그르치고 마는 것일까요? 좀 더 잘 살아보자고, 남보다 더 행복하자고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물건 좀 더 팔아보자고 병이 든 고기를 사오는 것 또한 이런 욕심이 아닐까요? 내소사의 설화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정맞은 중의 욕심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단청의 빈자리를 야박하게 채우지 않고 여백 그대로 남겨두어서 내소사의 대웅전은 수묵화처럼 살아있습니다.
화려한 단청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내소사는 세월의 흔적을 건물 곳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상처와 옹이와 손때를 만져보고 눈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소사의 대웅보전이 깊은 맛을 주는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 일 것입니다. 할머니 같이, 할아버지 같이, 능가산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내소사 목어 한 마리 내 혼자 뜯어도 석 달 열흘 우리 식구 다 뜯어도 한 달은 뜯겠다 그런데 벌써 누가 내장을 죄다 빼 먹었는지 텅 빈 그 놈의 뱃속을 스님 한 분 들어가 두들기는데…….
소리가 한, 그 소리가 허공 중에 헤엄쳐 나가서 한 마리 한 마리 수천마리 물고기가 되더니 하늘의 새들도 그 물고기 한 마리씩 물고 가고 칠산바다 조기 떼도 한 마리씩 온 산의 나무들도 한 마리씩 구천의 별들도 그 물고기 한 마리씩 물고 가는데…….
온 우주를 다 먹이고 목어는 하, 그 목어는 여의주 입에 문 채 아무 일없다는 듯 능가산 숲을 바람그네 타고 노는데…….
숲 저 쪽 만삭의 달 하나 뜬다
일부러 끌과 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꽃창살을 뒤덮은 사방연속 무늬는 꽃밭에 있는 듯한 착각에 들게 합니다. 내소사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 문살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언젠가부터 내소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만져보았고, 감탄했을 나무로 만든 꽃밭. 내소사는 꽃밭을 문 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연꽃무늬 문신(文身) / 문신
지금은 이모가 되었을 것이다
봉산동 큰언니라고 불리던 그 여자
생각난다
내소사 연꽃무늬 문살을 마주한 순간
불경스럽게도 나는
허허롭던 겨울밤의 짧았던 정사(精事)를 떠올렸다
오른쪽이던가 왼쪽이던가 기억은 흐릿하지만
엉덩이 한가득 피어 있던 연꽃 한 송이
밤새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을 가진 그 여자
서툰 두레박질로는 어림없지
보이지 않는 뿌리를 우물 속에 뻗어놓고
풋내 펑펑 풍기는 벌나빌르 유혹하던
연꽃무늬 문신(文身)
그 여자 지금은 이모가 되어
구멍 송송한 제 몸이너 다독이며살고 있겠지만
혹시 모르지
꽃 진 자리가 아련해서 우물 가운데 뿌리 하나 더 내렸을지
아니아니 어쩌면
우물보다 깊은 곳에 괜찮은씨방 하나 맺었는지 몰라
아무 바람이나 더듬고 간 내소사 연꽃무늬 문살처럼
쉽게 허락되곤 하던 그 여자 연꽃무늬 문신
부끄럽게도 눈을 감고 더듬는다
문득
내소사 문살마다 그 여자 엉덩이가 가득하다
내소사에 가는 길에 후드득 오던 비가 그쳤습니다. 안개를 살짝 먹은 처마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장난스레 걸어놓은 동자승이 슬며시 웃고 있었습니다. 내소사에선 나무 냄새가 납니다. 아니, 내소사는 뿌리를 내렸는지도 모릅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그래서 서서히 늙어가는 내소사. 돌아가는 내내 나무로 만든 꽃밭이 기억이 났습니다.
겨울 내소사
김문주 / 2007 불교신문 신춘시
세상에 수런거리는 것들은
이곳에 와서 소리를 낮추는구나, 변산
변방으로 밀려가다 잠적하는 지도들이
일몰의 광경 앞에 정처없는 때
눈내린 오전의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아름답다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도 풍경이 되고 어느새
동행이 되는 길의 지혜
작은 꺾임들로 인해 그윽해지고 틀어앉아
더 깊어진 일은
안과 밖을 나누지 않고도 길이 된다
나무들은 때때로 가지들어 눈뭉치를 털어놓는다
숲의 한쪽 끝에 가지런히 모여앉은 장광같은 부도탑들
부드러운 육체들이 햇빛의 소란함을 안치고 있다.
봉래루 설선당 해우소 산사의마당에는
천년의 할아버지 당산과 요사까지
저마다의 높낮이로 중심을 나누어 가진 집채들
부푸는 고요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의 숨들
숨길이 되고 집채 사이를 오가다, 아
바람의 꽃밭, 열림과 닫힘의 자리에
바래고 문드러진 수척한 얼굴들
슬픔도 연민도 모두 비워낸 소슬무늬꽃문
난만한 열망들이 마른꽃으로 넘는 저, 장엄한 경계
대웅보전 앞마당에 발자국들 질척거리고
진창을 매만지는 부지런한 햇빛의 손들이여
내소사 환한 고요 속에 오래도록 읽는다
서해 바람의 이 메마른 문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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